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국제교류새소식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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부천-가와사키 우호도시결연 토대 마련한 선인(先人)들의 마음, 보물이 되다
작성자 이혜경 작성일 2018-07-01

부천-가와사키 우호도시결연 토대 마련한 선인(先人)들의 마음, 보물이 되다

가와사키시 재일코리안 1세 故이인하 목사 10주년 기념식

 

국제교류 새소식은 교류사업에 관한 내용들이 많다.

이런 점에서 지금까지 양 도시 교류사업의 토대를 마련해주신 선인들의 마음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.

이인하 목사님은 1925년 당시 일본의 식민지였던 한반도에서 태어나, 일본으로 유학하고 재일대한기독교회 가와사키교회에서 활동하시다가 2008년에 서거하셨다. 6월24일(일) 오후 가와사키교회에서 서거 10주년 기념식이 개최되어 가와사키-부천시민교류회 배중도 공동대표(부천시명예시민이기도 함)가 강연했다. 이번 기념식에는 시민교류회 야마다 다카오 사무국장을 비롯한 약 100명이 참석했다.

 

일본 최대 기독교단체인 일본기독교단은 1941년에 설립되었는데 당시 일본정부가 침략전쟁으로 기독교단체들을 동원하기 위해 "합동"시킨 단체였다. 그러나 일본기독교단은 단순한 피해자가 아니라 식민지의 기독교단체에 대해 신사참배를 강요하는 조선총독부와 함께 침략전쟁의 "앞잡이"가 된 사실도 있었다. 그래서 한일 기독교단체 간의 관계 회복은 정말 어려운 상황이었다. 그러나 1965년에 일본기독교단 의장이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하였을 때 이인하 목사님이 통역을 맡았고 단순한 통역이 아닌 가교역할을 했다고 한다. 그 활동들이 결실을 맺은 것은 1967년에 일본기독교단이 발표한 "일본기독교단의 전쟁책임에 대한 고백"이었다. 일본의 기독교인은 가해자로서의 전쟁책임, 식민지배 책임을 인정한 것이다.

 

부천시와 가와사키시가 교류할 수 있도록 이인하 목사님이 노력하신 것도 그런 "화해"에 대한 열정이 토대가 된 것이었다. 이인하 목사님은 2003년 시민교류회를 설립했을 때 구보 다카오 선생님(전 가나가와현 부지사)과 함께 고문에 취임하셨다. 이것은 형식적인 고문이 아니었다. 사실 부천 측 시민교류회 이시재 공동대표와 가와사키 측 시민교류회 배중도 공동대표, 이즈카 마사요시 공동대표, 야마다 타카오 사무국장은 모두 이인하 목사님의 "제자"들이었고 이들의 정신적 기둥이었다.

 

 

한일간의 "화해"를 위해 노력하신 선인(先人)들의 마음

부천-가와사키 청소년 포럼 "하나"를 비롯한 젊은이들도 그 보물을 마음 속 깊이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.

가와사키시 재일코리안 1세 故이인하 목사 10주년 기념식

 

부천시국제명예자문과

오다기리 마사타케로부터

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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